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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켄마 생일이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야쿠의 말에 옷을 갈아입던 부원들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심지어 쿠로오같은 경우는 마치 제 생일이라도 된 듯이 어깨를 크게 움찔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켄마는 “…아.” 같은 탄성만 작게 내지르며 눈을 끔뻑거렸다. “응.” 그렇게 말하니까 1학년들이 깜빡깜빡 눈동자가 반짝이는 채로 “켄마 선배, 생일이 언제세요?”라고 물어보았다. “10월 16일.” 켄마가 역시나 무덤덤하게 제 생일을 이야기했다.

“진짜 얼마 안 남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켄마는 이번 생일에는 뭐 받고 싶은 거 없어?”

“…음, 새로 나온 게임.”

야쿠는 “또 게임이야?”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켄마 뒤에 쿠로오와 눈이 마주쳤다. 묘한 눈. 야쿠는 고개를 기울였다. 반짝거리는 눈이 쿠로오가 종종 뭔가를 꾸밀 때 짓는 눈이라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야쿠는 잠시 찡그렸다가 자기 표정을 보고 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표정을 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 번 쿠로오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 날 훈련을 마치고 하교하면서까지도 쿠로오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별 거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집에 들어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누웠을 때, 야쿠의 폰이 몇 번 진동했다. 진동 알람은 꺼놨는데 이상하다며 메신저에 들어가니 새로운 대화방에 초대되어있었다. 쿠로오, 카이, 나, 야마모토, 후쿠나가, 이누오카, 시바야마, 하이바……. 뭐야? 기존에 있던 네코마 대화방 있는데 굳이 새로 왜 만들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들어간 방에는 이 방을 만든 사람, 쿠로오가 말을 하고 있었다.

[있잖아]

[켄마 생일 마침 일요일이라서]

[서프라이즈 파티하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

아! 야쿠는 그제야 새로 만든 이유를 깨닫고 입술을 살짝 이로 깨물었다. 그러고는 혀를 살짝 내밀고 재빨리 제 엄지들을 놀렸다. 그렇게 혀를 살짝 물고 있으면서도 입꼬리는 귀에 걸릴 정도로 절로 치솟았다.

[나 할래]

[저 해보고ㅓ 싶여오ㅛ]

[저도요!]

쏟아지는 즉각적인 반응에 카이는 이미 동의라는 느낌으로 [뭐 생각한 건 있어?]라고 물어보았다. 그러게. 뭔가 생각한 게 있나? 아까 보았던 눈빛을 떠올리며 야쿠도 조용히 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쿠로오가 후후 하고 웃는 스티커를 보냈다.

[켄마 특제 서프라이즈 파티를 기획중이지]

[켄마는 게임을 좋아하잖아]

[게임 만들어보려고]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봐서 그것 좀 참고할까 생각중]

[그러려면 좀 빠듯할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어때? 한 번 해볼래?]

 

 

 

아침부터 울리는 진동소리에 켄마는 짜증부터 내기 시작했다. 맞춰놓지도 않은 알람이라고 생각하고 용의자 소꿉친구를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일 같이 못 가니까 너 꼭 제대로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몇 번이고 걱정하더니 결국 제가 안 보는 사이에 알람까지 설정해놓은 모양이었다. 쿠로 완전 과보호…! 그렇게 마음으로 가득히 불평불만을 퍼부으며 알람을 해제했다. 그런데 알람을 해제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쿠로오] 무시하려다가 한참 후에 한숨을 내쉬며 켄마는 전화를 받았다. ……. 아침이라서 말이 나오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더니

-일어나셨어요, 켄마 선배!

“…이누…오카?”

켄마는 제 귀에 댄 핸드폰을 떨어뜨려서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쿠로오.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그런데 왜 이누오카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켄마는 아직도 얼떨떨한 상태였다.

“…왜…….”

-켄마 선배! 그것보다 기상 미션!

“…에?”

대화 흐름을 종잡을 수 없는 경우는 많았지만, 아침부터 이렇게 휘몰아친 적은 처음이라 아무리 네코마의 뇌라고 해도 오늘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기상 미션? 그런 건 또 뭐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방을 훑다가 제 책상에 못 보던 편지 봉투가 하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잠깐만.” 켄마는 그렇게 전화를 유지하면서 몸을 일으켜 어깨와 제 귀를 바짝 붙여 핸드폰을 고정한 후 편지 봉투를 집어 들고 안의 종이를 꺼냈다. 들어있던 카드에는

 

[30분 안에 나갈 준비를 끝내고 검사받기!]

 

검사? 누구에게? 켄마가 흐릿하게 말을 흘리자 그 말을 용케 들은 이누오카는 여전히 신난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그럼 선배! 지금부터 30분이에요! 시-작!

“잠깐만 이게 무스….”

하지만 말은 끝나기도 전에 자비 없이 끝나버렸다. 그와 동시에 문을 두드리며 어머니의 목소리가 방문을 넘어 들려왔다. “켄마! 지금부터 시간 잴 거야?” 검사받는 사람이 엄마야? 켄마는 핸드폰을 얼른 책상에 내려놓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체육복을 갈아입고는 그제야 세수하러 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중간 과정은 모두 뛰어넘고 필요한 것만 딱 챙기니 30분은 무슨 10분 만에 준비가 다 끝난 채로 켄마는 가방을 메고 어머니 앞에 섰다. 도리어 어머니가 “가방은 다 챙겼어? 혹시 빠트린 건 없고?”를 물어보시고 켄마는 그 질문에 그제야 가방을 앞으로 메고 열어 손을 넣어 이것저것 만지면서 확인하고는 “…응.” 하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시계를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웃으며 “미션 클리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잠시만, 켄마.” 하시고는 냉장고 문을 열러 가셨다. 켄마는 거실에 있는 식탁에 올려진 탁상 달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늘이 내 생일. 어제까지는 기억했던 것 같은데 아침부터 이렇게 이상한 이벤트를 할 줄이야. 그렇게 달력만 멀뚱히 바라보는 켄마 앞에 어머니는 켄마가 먹는 브랜드의 우유와 애플파이 한 조각을 식탁에 올리셨다.

“미션 보상이래. 꼭 먹이고 보내달라고 당부하더라.”

애플파이는 어머니가 미리 데우신 모양인지 적당히 따뜻했다. 딱히 아침을 챙겨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음식에서 이렇게 좋아하는 향이 나는데 어떻게 넘어가겠는가. 켄마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켄마는 포크를 들었다. 한입 크기로 잘라 입에 넣으니 켄마가 전에 좋아했던 곳의 파이와 맛이 같았다. 켄마의 눈이 반짝이자 어머니도 웃으시다가 “참, 맞다.”라고 또 어딘가로 향하셨다. 우유와 파이를 번갈아가며 맞춰 먹던 켄마가 절반 정도부터는 손에 들고 먹던 파이를 다 먹어갈 때쯤 어머니가 다시 오셔서는 켄마 쪽 식탁에 또 편지 봉투를 내미셨다. 아마도 미션이라고 한 것이 이번으로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마지막 한 입까지 마저 먹고 손을 입으로 가져가 몇 번 핥고 새로운 편지 봉투를 열었다. 아까보다 더 두툼한 봉투였다.

 

 

두 번째 미션은 학교 근처 지하철역의 물품 보관소였다. 켄마는 지나치기만 했지 이용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괜히 쭈뼛거리며 물품 보관소 사용법을 읽고 있었다. 그러니까…켄마는 다시 편지 봉투를 열어 켄마 전용 배구부 쿠폰 앞에 놓인 미션 카드를 꺼냈다.

 

[5번 사물함 비밀번호를 찾아 다음 미션 장소로 오기]

 

그리고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힌트 달과 해] 그리고 약간 어딘가 찌부러진 것 같은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후쿠나가가 요즘 좋아하는 라인 스티커를 닮은 것 같아 보이니 아무래도 이번 미션은 후쿠나가인 듯했다. 다들 돌아가면서 미션을 낸 것일까? 켄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물품 보관소 사용법을 읽었다. 모니터에 열고 싶은 사물함 번호를 입력하고 그 밑에 비밀번호 네 자리를 입력하라는 지시사항에 켄마는 주저하지도 않고 사물함 번호 05를 누르고 비밀번호 네 자리를 입력했다. 힌트가 너무 쉬운 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정상처리 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걸어가서 5번 보관소에 편지 봉투에 있던 열쇠를 넣고 돌리자 보관소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안에 든 것을 보자마자 켄마의 눈이 또 반짝였다. 갖고 싶었던 게임팩이 눈에 띄자마자 괜히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거렸다. 가방을 다시 앞으로 돌려서 게임팩을 손에 집어 들고 몇 번 쓸어보다가 게임팩 앞에 붙어있는 봉투를 이제는 은근히 기대하며 열어본다. 이번 봉투도 역시 좀 두툼했다. 열어보자 미션 카드와 함께 사진이 들어있었다. 진회색의 대리석. 그리고 사진 끝부분에 살짝 보이는 검은 무언가.

 

[여기로 찾아오세요!]

 

켄마는 사진을 한참 보다가 “…아.” 탄성을 내뱉었다.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평소에 딱히 눈에 두고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서 “…음.” 곧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어쨌든 학교인 것 같으니까. 학교로 가보자. 거기가 아니라고 해도 그 주변일 거고. 그렇게 생각하며 켄마는 오랜만에 혼자서 등굣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항상 저와 같이 등교하는 쿠로오가 없으니 지하철에 탈 때까지만 해도 조금 어색했는데 점점 미션이 진행되면서 켄마는 왜인지 모르게 두근거렸다. 꼭 게임하는 것 같아. 그래서일까. 웬일로 켄마는 게임기를 가방에 넣어둔 채로 걸었다. 대신 그 두 손에는 아까 미션으로 받은 힌트 사진을 꼭 쥐고 있었다. 신호등 때문에 잠깐 멈춰 설 때마다 켄마는 그 사진을 다시 또 내려 보고 자신이 생각한 곳이 맞는지 고민했다. 그러다가도 다시 또 사진 뒤에 미션 카드를 바라보며 그 필체로 누가 문제를 낸 것인지 추리했다. 어딘가 둥글둥글한 글씨체. 시바야마가 이렇게 썼었…지? 그럼 지금까지 문제를 낸 사람이 처음에 이누오카, 지하철이 후쿠나가, 시바야마…….

그렇게 세다가 켄마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 하이바 리에프, 그리고 쿠로오 테츠로. 이 두 사람. 그래도 생일 미션인데 이상한 걸 내진 않았겠지 싶으면서도 아니, 이 둘이라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냐, 야쿠 군이나 다들 말려줬겠지.

그래, 리에프는 그렇다 치지만 쿠로는…….

쿠로는 어떻게 누가 말려줄 수 있을까? 아직은 뭔가 이상한 미션을 주거나 한 게 없으니 아마 이런 분위기(퍼즐/추리)로 진행할 것 같은데 이게 만약 각자가 알아서 적당히 미션을 짜서 만드는 구조였다면 또 달라질 수 있었다. 거기다가 쿠로오는 어쨌든 3학년 주장이었다. 리에프처럼 아예 선을 무시하고 돌진하는 타입이 아니니까 저를 곤란하게 만들 미션 같은 건 충분히 넣을 수 있겠지. 어떡하지. 이상한 거 한다고 하면 그냥 그럼 집에 갈까? 그런 생각까지 흘러가자 이제 신호가 바뀌었다. 그래. 그럼 그냥 포기한다고 하고 집에 가버리자. 켄마는 그렇게 혼자서 생각하며 발을 떼었다. 대리석에 검은 철제가 붙어있는 곳. 그곳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앞으로 200m라고 스쿨 존을 알리는 표지판에 적혀있었다. 하얀 벽을 따라 걷다 보면 나타나는 곳. 켄마는 확신하면서도 사진귀퉁이를 부러 더 꼭 잡았다.

 

 

학교 입구에 멈춰 섰다. 도립 네코마 고등학교라는 글씨가 적힌 대리석의 앞에서 켄마는 사진을 슬쩍 확인해본다. 사진에는 글씨가 보이지 않으니 아마 뒷면이겠지. 채 두근거릴 시간도 없이 먼저 발을 움직였다. 딱 한 걸음. 그 한 걸음을 걸어 학교 안으로 들어와서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대리석에 셀로판테이프로 편지 봉투가 붙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켄마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켄마가 게임이 잘 풀려갈 때 짓는 미소였다. 손을 내밀어 잡아당기자 테이프가 찐득거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깔끔하게 들렸다. 이젠 두께를 가늠할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봉투를 열었다. 이번에는 미션 카드 하나만 덜렁 들어가 있었다. 이 글씨는 야쿠 군. 그렇게 바로 누구라는 걸 알아보고 켄마는 미션 카드의 미션을 읽어보았다.

 

[5일의 시작과 끝. 너의 자리에서부터]

 

야쿠 군은 역시 켄마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간단명료한 미션에 켄마는 눈동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고개도 같이 따라 돌아가다 왼쪽에서 갸우뚱했다. 5일의 시작과 끝. 5일이라는 건 아무래도 주말을 뺀 주중을 이야기하는 걸까? 그렇다는 건 훈련하러 오는 날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로 등교하고 하교하면서 꼭 지나치는 곳이라는 뜻인데. 지금 서 있는 이 교문이라고 하기엔 ‘나의 자리’라는 것이 애매했다. 교문에는 자리라는 것이 없으니까. 지금 서 있는 곳을 나의 자리라고 지칭하기엔 어딘가 이상하고. 그럼 다른 곳이 또 있던가. 켄마는 튼 입술껍질을 손으로 뜯어내며 몸을 교문 반대편으로 돌려 평소 등교할 때의 길을 눈으로 훑었다. 입술을 뜯어내며 약간 비릿한 피 향을 맡으며 곧 켄마의 눈이 어느 한 건물에서 멈췄다. 본관 중앙에 위치한 전교생 신발장. 켄마는 눈을 깜빡였다. 그런데 일요일에도 저기 본관에 문을 열던가? 미션을 받긴 했지만, 항상 주말에는 체육관이나 부실로 바로 가니까 확실하게 열려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뭐, 열려있으니까 미션을 적은 거겠지. 켄마는 느긋하게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눈빛은 두근거렸고, 그다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본관 문은 열려있었다. 하지만 주말이라서 그런지 조용하기만 해서 켄마는 그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제 발소리도 엄청 크게 울리는 것 같아서 눈치를 보던 켄마는 최대한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디뎠다. 걸어서 도착한 곳은 켄마의 신발장 앞. 신발장으로 오기 전부터 뭔가가 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켄마가 시작점에 도착하자 알록달록한 화살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켄마의 신발장 앞에는 미션 카드가 붙어있었다.

 

[하나하나 화살표를 따라오면서 도착점의 신발장을 열어볼 것!-단 확인한 화살표는 떼기]

 

하나하나 오리느라 힘들었겠다.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꽤 많은 형형색색의 화살표들이 이곳저곳에 붙어있어서 켄마는 이걸 언제부터 준비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럼 시작해볼까. 켄마는 이번에도 시원하게 제 출발점에 붙어있는 미션 카드를 떼는 것으로 출발 신호를 알렸다. 미션 카드 밑에 숨어있던 화살표에는 [오른쪽으로 5칸 전진]이 적혀있었다. 블루마블? 이번에는 보드게임 콘셉트일까? 손톱으로 살살 긁어 화살표도 깔끔하게 뜯어내고 켄마는 5칸 전진했다. 그렇게 3칸 위로 전진, 5칸 오른쪽 전진, 1칸 밑으로 내려가기, 7칸 전진하고 4칸 돌아가고 점점 화살표가 귀찮아질 때쯤 화살표의 문구가 [!]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그다음 칸 신발장 주인이…….

“윽.”

하이바 리에프였다. 드디어 왔다. 마(魔)의 스테이지. 열어보기도 싫어서 켄마는 얼른 라인 앱을 눌렀다. 단체 채팅 방에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타이핑했다.

[스킵하게 해줘]

그러자 채팅 방에 w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뒤이어 곧 쿠로오에게 전화가 왔다. 켄마는 인상을 쓰며 수락하자마자 채팅 방에서 말한 것처럼 “스킵하게 해줘.”라고 다시 강경히 말했다.

-너 지금 어딘데.

그렇게 진행 상황을 묻는 쿠로오의 목소리에는 웃음소리가 묻어있었다.

“신발장 앞.”

-이상한 거 안 넣었으니까 그럼 일단 열어봐. 우리가 그래도 다 검수했어.

“…진짜?”

그러자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신발장 미션을 낸 야쿠의 목소리였다. 야쿠도 웃음기가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켄마? 하며 켄마를 달랬다.

-내가 보증할게. 진짜 이상하진 않을 거야.

“…알았어.”

-켄마! 잠깐만, 너 내가 말할 때는!

뚝. 쿠로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켄마는 통화를 끊어버리고도 여전히 불안해서 한숨을 쉬었다. 열자마자 뭐가 깜짝 놀랄만한 게 튀어나온다거나 하면 진짜 집으로 가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한 번 더 쉬고는 켄마는 손을 올렸다. 그리고 신발장을 열었다.

신발장 안에는 실내화와 실내화 위에 올려진 익숙한 봉투가 있었다. 손가락을 어떻게든 쭉 뻗어 실내화에 손톱 하나도 닿지 않게끔 조심히 꺼내서는 봉투를 집어서 꺼내자마자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더는 닿기도 싫다는 듯 행동하지만 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분명히 이 봉투에 든 미션 카드. 아마도 그 녀석 차례다. 검수했다고는 하지만…….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미 ‘일단 보기라도 하면 어때?’라는 의견도 들었고 ‘보증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분명 여기서 물러서면 나중에 만났을 때 리에프에게 시달릴 게 뻔했다.

 

[보물찾기 미션!]

 

이라는 것에 다시 밀어 넣을 뻔하다가 다시 숨을 쉬었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는 사람 머리 위에 있는 게 보물이에요! 착용하세요!]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밑에 아주 친절하게 제 이름을 적어놓았다.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리에프니까…라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학교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는 사람. 경비아저씨? 아니면…교장 선생님? 하지만 과연 리에프가 그런 분들을 기억하고는 있을까. 무엇보다 진짜 사람이기는 할까.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 같은 형상의 오래된 것. 어느 시간에 가도 가만히 있어서 머리 위에 있는 걸 가져올 수 있는……. 참…. 그러고 보니……. 리에프, 생각 외로 글씨 잘 쓰는구나. 당연히 이미지가 악필일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켄마는 다시 한 번 글씨를 바라보았다. 읽을 수 있을 수준의 글씨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잠시 멍하니 문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흔들렸다. 반짝반짝 나뭇잎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데 바람 때문에 흩날리고 있었다. 특히 저기 큰 나무는 학교 창립 당시부터 세워졌다고 들었는데 진짜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엄청 굵고 커서 근처에만 가도 작은 바람 소리가 사각사각 들리곤 했다. …아.

그건가.

켄마는 발걸음을 뗐다. 집합시간은 아침 10시. 제한시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켄마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기 생일이라고는 하지만 춘고전도 준비하고 있고 모두 할 마음이 가득하니 그 이상 늦어지면 다들 곤란해 할 것이다. 켄마는 본관에서 나오다 말고 뒤를 돌아 벽에 붙은 시계를 확인했다. 9시 50분. 십 분. 야쿠 군까지 네 명. 그렇다는 건 리에프를 포함해서 아직 네 번의 미션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한 번도 막힌 적 없이 잘 해결해왔지만, 막상 십 분이라고 말하니 너무 턱없어 보였다. 조금 서두를까. 켄마는 잰걸음을 걸으며 자기가 생각한 ‘학교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에게로 달리듯 걸어갔다. 시간 때문이지 사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켄마는 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그 사람은 그 자리에 항상 앉아있었으니까. 앉아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움직이는 것은 아니긴 했다. 학교 창립 기념으로 세운 나무와 같이 있었던 사람. 그런 의미라면 확실히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긴 했지. 아마 이 문제는 리에프가 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켄마는 그 큰 나무의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지나쳐 책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동상에 도착했다.

“…에.”

그리고 그 동상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착용하고 오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아무리 생일이라지만 이런 걸 쓰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잖아.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시간이 이렇다 보니 운동장에도 슬슬 다른 운동부들로 채워지면서 동상 머리 위에 있는 고깔모자에 다들 눈길을 주고 있었다. 리-에프. 쿠로……. 검수했다더니 이런 건 괜찮다고 넘어갔단 말이지. 켄마는 결국 짜증을 내며 폴짝 뛰어 동상 머리 위의 끈을 잡아챘다. 그리고 당겨 고깔모자를 벗겼다. 그런데 뭔가 고깔모자가 종이인데도 불구하고 뜻밖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모자 안쪽을 살펴보니 역시나 모자 안에 무언가가 붙어있었다. 편지봉투였다. 그 안엔

 

[이 열쇠는 어디 열쇠일까요?]

 

라는 간단한 문장의 카드와 함께 열쇠가 셀로판테이프로 붙어있었다. 이번 글씨는 크게 카드를 채워 넣은 것만 보아도 의욕이 팍 넘쳤다. 토라다. 켄마는 그렇게 바로 글씨의 주인을 알아보며 열쇠를 뗐다. 어디인 건 뻔했다. 체육관 아니면 부실의 열쇠겠지. 그럼 둘 중 어디일까. 왠지 체육관은 마지막 장소일 것 같이 생겼으니 일단 부실 먼저 가보자는 추리를 하면서 켄마는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했다. 9시 53분. 여기서 부실까지 약 3분, 부실에서 체육관까지는 느긋해도 2분에서 3분이니까 얼추 시간 내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열쇠는 부실이 맞았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는데 전혀 막히는 것 없이 술술 잘 들어갔고 달칵하고 잠긴 게 풀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혹시 부실로 들어가면 막 폭죽이 터지거나 풍선이 보이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부실은 어제나 그저께 봤던 풍경과 똑같았다. 아니, 조금 다르긴 했다. 켄마의 로커에 오늘 아침부터 계속 봐왔던 편지봉투가 붙어있었고 자물쇠가 입구에 걸려있었다. 또 잠금 해제 미션. 퍼즐/탈출/추리물에서는 흔히 보이는 것이지만 이렇게 지하철도 사물함도 방금의 부실 열쇠도 어딘가 뻔한 것이라서 켄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뻔해도 또 하게 되는 게 그 게임의 묘미라서 켄마는 신발을 벗어 제 로커의 편지봉투를 열어보았다.

 

[마지막입니다. 비밀번호는 2자리 번호입니다. 보물들을 들고 체육관으로 와주세요.]

 

……에? 그게 끝?

켄마는 갑자기 이렇게 불친절한 힌트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2자리인 건 다이얼이 2개가 있어서 굳이 편지에 적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00부터 다 한다고 해도 100개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데 이걸 시간 내로 완성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무식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카이의 글씨라는 걸 눈치챈 켄마는 그의 성격상 이렇게 불친절하게 끝낼 리가 없다는 걸 쉽게 추리했다. 그렇다고 해도 또 도를 넘은 친절을 베풀지도 않지. 즉, 굳이 적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는 이 미션 카드에 비밀번호를 적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금 시각은 9시 56분이었다. 흐음…. 켄마는 이리저리 시간을 머릿속으로 재보지만 역시 애매했다. 옷도 얼른 갈아입어야 하니까 시간은 더 모자랄 것 같았다. 두 자리의 숫자. 뭐일까. 아마도 생일이니까 나와 관련되어있을 것이고 다들 배구 좋아하니까 배구와 관련된 걸까. 그 생각에 눈을 깜빡이니 숫자 몇 개가 떠올랐다. 가장 빠른 쪽을 넣어보자. 켄마는 00으로 맞춰진 다이얼에서 아래쪽만 숫자를 돌렸다. 그러자 곧 달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무식하게 돌렸어도 금방 맞췄을 거란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한 번에 맞혔다는 생각이 연이어 떠오르자 뭐 어때-라는 마음으로 얼른 문을 열었다. 그리고 사물함에 있는 보물이라는 것을 보고 켄마는 또 표정을 한껏 찡그렸다. 일단은 위에 입고 있던 저지를 벗고는 있지만, 눈은 계속 그걸 노려보고 있었다. 옷을 벗다 말고 손목에 걸린 고깔모자도 그제야 다시 발견해서 켄마의 눈썹이 거의 하늘 높이 치솟고 미간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가 찌그러졌다. 미션 카드에는 보물 ‘들’이라고 지칭했으니 아마 이 보물과 고깔모자 둘 다 착용하고 오라는 말이겠지만 켄마는 그게 여간 불편하고 맹렬히 거부하고 싶었다. 시간. 시간을 다시 확인하니 58분이었다. 2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켄마는 계속 고민했다. 이걸 진짜 착용하고 가야 할까……?

 

 

“그런데 진짜 켄마 선배가 하고 오실까요?”

시바야마가 고깔모자를 쓰다 말고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 말에 이누오카는 “하고 오시지 않을까! 미션이잖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본인도 곧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마도?”를 덧붙였다. 그렇게 서로에게 고개만 기울이는 1학년에게 대선배 야쿠는 웃었다. “안 하고 오면 문 안 열어줄 거야.” 농담같이 말했지만,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어서 1학년 둘은 히히 하고 웃어버렸다. “켄마 선배, 엄청 짜증 내실 거 같아요.” 그 말에 야쿠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준비해줬는데 그 정도는 우리에게 해줘야지.” 야쿠는 그렇게 말하며 괜히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때였다. 멀리 내다보던 리에프가 “왔어요!” 하고는 얼른 체육관으로 그 긴 두 팔을 펄럭이며 들어왔다. “너 들킨 건 아니냐?” 그렇게 화내듯이 혼내는 야쿠에게 “절-대 안 들켰슴다!” 하며 아주 당당하게 웃었다. 은발에 크기도 엄청 큰 녀석이 퍽 안 들켰겠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번뜩 야쿠는 “보물 착용은 했어?”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리에프가 눈을 잠시 동그랗게 뜨더니 아주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내밀어 브이를 만들었다. 조용히 말을 듣고 있던 쿠로오가 씩 웃으며 “자, 그럼 모두 집합! 주인공 오신다!” 하고 모두를 긴장시켰다. 그렇게 말하는 쿠로오의 머리에도 작은 고깔모자가 아슬아슬하게 쿠로오의 뻗친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쿠로오는 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드르륵, 켄마가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졌다.

그리고 함성과 함께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Happy Birthday! "주인공에게 인사를 건넨다.

들어온 켄마의 머리 위에는 고깔모자가 있었고 켄마의 눈에는 초 모양으로 장식된 생일 데코 선글라스가 있었다. 그리고 두 볼은 뛰어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부끄러운 차림새로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건지 약간 불그스름한 상태였다. 그 모습에 네코마 배구부원들은 모두 웃었다. 푸딩 머리와 은근히 어울리는 그 볼과 알록달록한 고깔모자와 선글라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에 켄마는 결국 선글라스를 집어 던졌다. 고깔모자까지 벗으려는 아이를 겨우 말리고 쿠로오는 케이크를 내밀었다. 초에 붙은 불이 잠시 멈춰버린 웃음소리에 일렁이다가 멈춘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시작되자 다시 초가 리듬을 타듯이 일렁거렸다. 모두 그 우스꽝스러운 고깔모자를 낀 채로 다들 노래를 불렀고 같이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켄마는 어색하게 서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케이크를 내밀자 켄마는 잠시 주저하더니 숨을 들이쉬고 후 세게 불었다. 다시 또 기다렸다는 듯 폭죽이 터졌다. 소중한 세터의 생일을 맞이해서 다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모여 풍선도 불고 폭죽도 준비하고 학교에서 진행할 미션도 마저 준비했다. 학교 문을 닫기 전까지 연습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더 빨리 등교하고. 사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반짝이는 켄마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모두 씩 웃어버렸다.

 

 

 

“그런데 왜 쿠로는 없어?”

마지막 이벤트인 롤링페이퍼 수여식이 끝나고 케이크를 나눠 먹기 위해 모두 일회용 접시를 들고 움직일 때였다. 켄마는 제게 가장 작은 조각이 담긴 접시를 건네주는 쿠로오에게 질문했다. 미션은 총 일곱. 하지만 쿠로오까지 사실은 여덟이 돼야 했었다. 이상한 걸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없는 편이 백 번 천 번 낫지만 그래도 막상 쿠로오는 없었다는 걸 알고 나니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서운해서 켄마는 쿠로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예리한 켄마의 질문에 쿠로오는 그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곤 켄마의 귀에 속삭였다.

쿠로오 씨 미션은 다 끝나고 집에서.

그 말에 쿠로오는 바로 켄마에게 옆구리를 가격당했다. “쿠로오 선배, 당했다!” 리에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분명 또 뭐 쓸데없는 말 했겠지.” 야쿠의 예리한 지적에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케이크로 시선을 돌렸다. 허윽. 자신의 이런 취급에 이제는 익숙해진 쿠로오가 조용히 옆구리를 쓰다듬는데 갑자기 켄마가 쿠로오 귓가에 제 입을 가까이했다.

기대 이하면 각오해.

오야? 쿠로오는 금세 또 능글맞게 웃으며 켄마를 얄궂게 바라보았다. 켄마는 한 번 미간을 찌푸려 코를 찡긋거리고는 다른 쪽으로 걸어간다. 절대 기대 이하일리 없었다. 켄마를 잘 알고 있는 소꿉친구는 확신하면서 제 몫의 케이크를 포크로 잘라 입에 넣었다. 케이크가 달았다. 집에서의 시간은 더 달콤할 것이다. 그건 둘만의 비밀이었다.

닛님(@ninieun)

2016.10.16 Happy Birthday to Kenma​

생일 축하해요. - 이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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