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켄마, 바다가자.”
쿠로오는 대뜸 말했다. 아주 뜬금없이. 당연스럽게도 켄마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주말의 낮. 하도 문을 두드려대기에 귀찮음에도 친히 문을 열어줬더니만 하는 말이라고는. 더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켄마는 쿠로오를 살짝 밀치고 현관문을 닫으려 했다.
“잘가, 쿠로. 다음에 봐.”
“잠시만! 켄마, 잠시만. 기다려봐.”
매정하게 문을 닫아버리는 켄마. 그에 쿠로오는 다급히 문을 붙잡았다. 하지만 켄마도 지기 싫다는듯 온 힘을 다해 문을 자기쪽으로 잡아당겼고, 쿠로오도 문을 다시 열기 위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기나긴 실랑이 끝에 결국 켄마가 손을 놓아버렸다. 힘이 딸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귀찮았기 때문에. 켄마는 한숨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웬 바다...”
“너 생일이잖아.”
생일 기념으로. 라며 쿠로오가 사람좋게 웃자, 켄마는 짜증과 걱정의 한숨을 쉬었다.
이건, 필수퀘스트...
*
사실 켄마가 그와의 여행을 거부했던건 귀찮음 뿐만이 아니였다. 아주 비밀스런,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너무 비밀스럽고 무거워 여태껏 숨겨와 입밖으로 내뱉을 생각도 안한 고민이자, 약점이자, 이유.
지금. 켄마의 심장이 뛰는 이유. 지금. 켄마가 걱정하는 그 이유.
그랬다. 그는 자신의 소꿉친구를 마음에 담았고
그렇다. 그는 자신의 소꿉친구를 사랑한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까먹을 만큼, 오랫동안. 그 긴 시간동안 켄마는 사랑을, 두근거림을. 억제하고, 절제하며, 꾹꾹 참아왔다. 그렇게 살다보니 그것에 익숙해져 쿠로오의 곁에 있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은. 단 둘의 여행은. 솔직히 위험하다. 익숙해졌다곤 해도, 그에게 다가가고픈 마음마저 부정할 수는 없는거다. 이미 부풀어진 마음인데. 분위기 잘못타면, 언제 터질지 몰라.
켄마는 수많은 자책과 다짐을 머리속에서 되새김질을 하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심장이 무겁고, 어깨가 무겁다. 그와 하루종일 추억을 만들어 가면서, 과연 제 모든것을 숨길 수 있을까, 쿠로오의 맞은편에 앉게 된 켄마는 아무래도 진정이 되지않았다. 벌써 불안하기에. 일단, 켄마는 회피방법으로 침착하게 게임을 시도했다. 하지만,
“켄마, 당일치기는 짧은데 그 시간을 게임으로 보낼 셈이야?”
실패했다.
시무룩해하며 게임기를 자신의 가방속에 넣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켄마였다. 이 모든 상황을 최대한 피할 방법을.
**
귀엽다. 곤히 자고있는 켄마를 보며 쿠로오는 생각했다. 미칠듯이 귀엽다고. 뜬금없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데. 쿠로오는 그의 흘러내리는 머리를, 다정히 정리해주고 창가를 한번 보다가 다시 켄마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라고. 그는 또 생각했다.
켄마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는 이미, 사랑하고 있기에.
켄마 만큼은 아니지만, 꽤 오래전부터.
서로의 마음을 서로만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켄마를 감상하고 있자니 갑자기 확 쏟아지는 빛. 아까와는 다른 화사함에 놀라 쿠로오는 재빨리 바깥을 보았다. 어느새 창밖에는 바다가 지천에 펼쳐져 파도 하나하나가 햇빛을 머금고 있었고, 영롱한 푸른 색이 그의 눈에 알알이 박혀들어왔다.
“켄마, 켄마. 일어나 빨리.”
쿠로오는 즉시 켄마를 흔들어 깨웠다. 그때문에 억지로 눈을 뜨게 된 켄마는 좌우로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도착.. 했어?”
“아니. 아직이야.”
“그럼.. 왜 깨운거야..”
눈을 비비적거리는 켄마를 보며 살풋 웃은 쿠로오는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새삼, 바다가 켄마를 닮았다 생각했다.
“그냥. 바다가 예쁘잖아.”
이 여행은 그의 생일기념 이라는 명목 외에도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길고 질긴 짝사랑의 사슬을 끊어버릴.
자신을 고백하고, 그대를 사랑할.
***
파도가 모래를 씻기고, 돌아갔다.
여름의 더위가 지나고 더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바닷가엔 켄마와 쿠로오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박대는 모래의 소리. 둘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걷고만 있었다. 한쪽은 두근거림을 감추기 위해, 한쪽은 두글거림을 알리기 위해. 서로를 기다리고, 기다기리만 했다. 이 기싸움 아닌 기싸움. 패자는 쿠로오였다.
“너와 단둘이 여행 온건 이번이 처음이네.”
“...그러게.”
‘처음’ 이라는 왜 그리도 사람 설레게 하는지, 켄마는 새빨개졌음이 확실한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였고, 제 기분에 취해 그걸 알 턱이 없는 쿠로오는 아쉽게도 그걸 보지도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 처음이 네 생일이라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네.”
“...징그러워 쿠로.”
켄마의 고개가, 더 숙여졌다. 어찌 저런 낯부끄러운 말을 쉽게도 내뱉을 수 있는지. 그래도 한편으론 징그럽다는 모진 말에도 별일 아닌듯, 웃어주는 쿠로오가 고맙기도 했다. 멋지던지 어쩌던지 제발 둘 중 하나만 하라고.
“징그러워도 어쩔 수 없어. 더 징그러운거 할꺼라고.”
“또 뭘 하려고..”
쿠로오는 여전히 웃고있어서 켄마는 도저히 그를 읽을 수 없었다. 뭐지. 뭘 하려는거지,
“네 생일에 말하려고 기다렸거든.”
“...”
“내가, 널. 좋아해. 켄마.”
커져버린 파도는 둘의 소리를 모두 삼켜버렸고 그 사이 해가 저물어 어둠이 하늘을 물들여갔다. 놀란 표정. 쿠로오는 켄마의 표정에 살짝 안심했다. 일단 표정이 썩지 않은 것으로 안심해야하나. 이제, 쿠로오의 모든 일은 끝났다. 다시 기다려야 하는 일 뿐. 둘은 어느새 발이 멈춰져 있었고, 그 공간의 시간마저 멈춰져 있었다.
“쿠로,”
“으.. 응?”
“내 생일이니까.”
모든게, 멈춰져 있었다.
“입, 맞춰줘.”
켄마는 쿠로의 옷자락을 꼬옥 잡고, 크디 큰 눈물들을 흘러보내며 말을 했다. 자신의 힘들었던, 모든 시간들의 달디단 보상이였다. 그러니, 눈물이 나올 수 밖에.
반면 쿠로오는 살짝 당황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의 마음속엔 점점 환희가 가득 차 올랐다. 자신 또한 눈물을 흘릴 것 같았짐만, 마무리를 위해. 참아냈다.
“켄마,”
“...”
“생일축하해.”
그리고, 입맞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