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
바람이 아니더라
내 뒤에 서있던건, 바로 너더라
아침이였다. 가을인 것을 알리듯 뜨겁지 않은 따스한 햇살이 창문의 유리를 넘어 흘러왔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지겹게 듣던 찌르레기 소리를 닮은 매미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농촌도 아니기에 귀뚜라미 소리도 적었다. 가을이란. 공강으로 점칠된 월요일의 전날인 일요일의 전날인 토요일, 무언가 수식어구가 긴 것은 기분 탓이지만, 날씨는 확실히 좋았다. 모든 것이 적당했다. 눈을 뜨자 히끄무레한 인형이 비췄다. 해바라기처럼 위로 솟은 머리. 언제쯤 저 잠버릇이 고쳐질까 생각을 하며 저도 몸을 일으킨다.
“쿠로.”
“깼네, 켄마?”
주말이라 더 늦게까지 자도 됐는데. 눈 앞의 소곱친구가 자신이 할 말을 대신 하고 있었다. 의외로, 켄마는 아침형 인간이였다. 이 세대에 자필레포트를 3장이나 내라던 교양과목 교수에게 쌍욕을 하며 손글씨로 흰 종이를 채워나갈지언정, 설마 그 때문에 3시간도 못 잔다 해도 7시에는 일어났다. 그 때문에 1교시가 시작하는 10시에 맞춰 스케쥴을 짜는 쿠로오보다는 항상 일찍 일어났다. 몸에 밴 습관같은 것이였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였다.
“쿠로야 말로 무슨 일이야. 아직 7시...”
“뎅뎅뎅 오후입니다~ 거의 밤새서 게임하니까 그렇지.”
켄마의 고개가 급하게 시계쪽으로 돌아갔다. 눈알을 데구르르 돌려 시계를 보았다. 진짜, 12시 22분...? 늦잠 자는거 초등학교 4학년때가 마지막이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일요일이라 다행이라 자위하며 켄마가 이불을 개며 말했다. 매일 늦게 일어나는 쿠로오가 하던 이불 개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였나, 가는 팔로 두꺼운 두께의 솜이불 – 어제 왠지 덥다 싶었더니 가을인데 벌써 솜이불 꺼내놨었구나 –을 들고는 반의 반으로 접자, 나름 모양새를 갖춘 듯 하였다. 켄마가 약간 하품을 하는 듯 나른한 눈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쿠로는 어디가는데?
“나 오늘 동기들이랑 술마시려고. 슬슬 졸업하는 얘들이 많아지니까.”
“집안일 내가 다 해야겠네. 일요일도 나잖아...”
“오늘만 봐주세요 코즈메 형.. 그런 표정으로 볼 필요까진 없잖아!”
얼씨구 잘도 논다. 대학교 4학년이나 돼서는 후배랑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랑 이렇게 지낸다고 하면 역시나 거북하겠지. 접었다고 생각한 감정이 스물스물 새는 느낌에 아래에 깔았던 이불까지 개서 정리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등만을 보이는 켄마였다. 머리를 약간 쓰다듬고선 나 잘가라고 안해줘? 하는 쿠로오의 속상한 듯한 목소리에 잘가, 하고 작게 말해주었다. 속삭이다 싶이 하는 말을 들었는지 쿠로오가 기분 좋은 듯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소리치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의 짧은 바늘은 어느새 1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6시간을 더 자니까 조금 더 상쾌한 기분은 들었지만,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오늘도 힘내자!‘ 같은 상쾌한 구호를 외치기에 쪽팔리다는 것은 22세 코즈메 켄마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꽤나 기분 좋은 하루였다. 쿠로오의 손이 쓰다듬던 정수리 부분을 만져보았다. 왠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바쁘진 않았다. 사람이 반이니, 가사일도 반절이 되었다. 어젯밤에 게임을 하며 먹은 애플파이를 감싸고 있던 비닐봉지와 부스러기가 담긴, 쿠로오가 흘리지 말라며 받혀준 접시를 치우고선 오랜만에 청소기를 돌리기로 했다. 일단은 밥부터 먹고. 브런치도 아닌 그냥 런치를 먹게 되어 버렸다. 학식을 먹을까 고민했지만, 식단을 보고선 관뒀다. 그렇게 맛 없는 편은 아니지만 꿀같은 토요일을 굳이 시금치와 싸우며 지내고 싶지 않았기에 라면봉지를 꺼내들었다. 사실 켄마는 그다지 식욕을 느끼지 못했다. 안 배고프다. 그 생각을 하니 문득 쿠로오가 한 말이 생각났다.
‘가끔 보면 넌 욕구가 거의 없다니까. 게임이나 애플파이 같은 것만 빼면, 네가 잠을 많이 자, 여자를 만나, 밥을 많이 먹어?’
오늘은 많이 잤네. 그 셋중 하나는 한걸까. 여자는, 응, 지나가도록 하자. 제일 신경 쓰이는 말 이였지만 – 내용이 아닌 쿠로오가 그 말을 했다는 점에서 – 여자 만나서 뭐하라고. 소중한 시간에 일차적으로 귀찮고 데이트비용 들고. 그러고보니 쿠로가 나 성욕도 없어보인다고 했었나.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몽실몽실 뭉쳐져 머리 속에 연기를 피워 생각을 차단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선 켄마가 손에 들고있던 스프를 쏟았다. 면을 넣고 그리 많이 지나기 전, 적당한 타이밍이였다.
문제는, 넣은게 아니라 ‘쏟았다’.
“젠장..”
켄마의 미간이 살풋 찌푸려져 주름을 만들었다. 눈썹이 약간 들려 누가봐도 지금 나 짜증났어요 하는 표정이 되었다. 드물게 얼굴에 띄워진 표정이 짜증내는 표정이라니, 켄마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숨을 고렀다. 괜찮아, 괜찮아, 스프 좀 많이 넣었다고 죽지 않... 켄마가 하던 합리화는 빨간 국물에서 나오는, 눈이 아플 정도의 매운내에 사라졌다.
점심을 간단하게, 그러니까 라면에 밥에 계란에 떡을 풀어서 먹고 나서 켄마가 책상에 엎어졌다. 책상에는 샤프와 부서진 샤프심, 그리고 어제 쓰다말고 게임의 세계로 떠난 켄마를 현실에서 기다리는 레포트가 있었다. 켄마에게 필수 교양만큼 짜증나는 과목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공은 그나마 흥미 있는데라도 가지, 그게 안되면 복수전공이라도 하지, 교양은 뭣도 아니였다. 컴퓨터의 자판이 타다다닥 써졌다.
“데드라인이... 수요일이네. 화요일에 써야지.”
켄마가 손에서 펜을 돌리며 책상, 정확히는 책상에 놓인 종이 무더기에 얼굴을 묻었다. 잠이라도 잘까. 하지만 거의 8시간은 잤는데 깬지 3시간도 안되서 잠이 오긴 할까, 하고 생각하던 켄마는-
책상에서 엎어진 그대로 잠들었다.
히익, 말도 안되. 사람이 하루에 12시간 넘게 잘 수 있는 건가. 현재 시각은 10시 13분. 그러니까, 정확하게 6시간 더 잤다. 켄마는 너무 오래 자 오히려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공기가 무거웠다. 분명 누웠을 땐 해가 쩅쨍 햇빛이 반짝이였는데 어쩌다가 밤에 일어난거냐. 야메로! 모 야메룽다! 켄마는 두뇌 세포들의 거센 반발들을 무시하고는 수긍했다. 괜찮아, 진정해, 내일은 일요일이잖아? 그리고 쿠로는 저녁밥 알아서 먹었겠지.
아
쿠로
쿠로, 아직도 안 들어왔네. 켄마가 방에서 나오며 생각했다. 미야옹,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미세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창문 너머 희미한 가로등에 비추는, 머리쪽에 주황색과 검정색 얼룩이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네코...? 사진, 사진 찍어야지. 분신과도 같이 들고다니던 스마트폰보다 눈에 띈 것은, 꽤나 의외였다. 작년 생일날 쿠로오가 사준 카메라. 대학생이라 게임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위한 나름대로의 배려였던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쿠로, 사진 찍는 것 참 좋아했었지. 어릴 때부터 은근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쿠로오였다. 현재 집에 있는, 액자에 넣어진 사진은 한 장 뿐이였다. 그가 수험생의 길을 달리고, 저는 고등학교 2학년, 십팔청춘의 날을 보내고 있었을때의 한창인 여름의 합숙이였다. 네코마 배구부의 마지막 단체사진. 고3때는 체육특기생으로 꽤나 좋은 대학에 입학해버린 쿠로오 때문에 배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고, 같은 대학에 입학 할 수 있었다. 그후로도 사진 찍은 것은 꽤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디카에는 거의 없지만 – 쿠로오가 사용법을 설명해 줄 때 찍은 몇가지 밖에는 – 쿠로오가 가지고 있는, 속히 ‘대포’로 불리는 카메라에는 쿠로오가 사진기를 받았던 15살부터의, 지독히도 오래된 기억들이 담겨져 있었다.
오랜만에 잡는 사진기의 감각은 꽤나 좋았다. 사진찍기가 중단된 이유는 첫쨰, 바빠서, 둘째, 찍을 것이 없어서,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내가 싫어해서. 내가 찍히는 것은 싫은데, 쿠로오의 렌즈에 다른 사람이 담겨지는 건 또 싫다는 이기적인 마음.
찰칵, 고양이가 화면에 담겼다.
초점도 제대로 잡을 줄 몰라 몇 번을 더 한 다음에야 제대로 알 수 있었고, 그 뒤로 계속해서 무언가 찍었다. 무언가 갈구하듯, 아니, 탐하듯 지독히도 찍어댔다. 안경을 쓰고 방ㅇ서 나와 모든 것을 찍었다. 이 순간을 담으려는 듯.
켄마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무난한 달력이였다.
내일의 날짜인 10월 16일에는 빨간색 동그라미와 별 세 개가 그려져있었다. 무슨 날이지, 하고 떠올리던 켄마가 무언가 머리에 떠올려내고선 디카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툭, 하는 소리가 꽤나 크게 났지만 부서지지 않은 화면은 검은색을 비췄다.
내일은, 자신의 생일이였다.
자신조차 잊고있었던 생일이지만, 하루종일 혼자서 보냈다. 그리고 생일이 시작하는 1시간 뒤까지 계속 혼자일 것이지. 왜 너는, 항상 내 옆에 있었으면서 이럴때만 왜. 뭔가 차오르는 듯 했다. 그것이 액체이던, 억누를 수 없던 감정이던, 무언가 목까지 차올라 숨이 턱 막혔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사라졌다 생각한 어린날의 치기가, 갑작스럽게 몰려왔다.
타이밍 대단하네. 쿠로오한테서 늦는다는 문자가 왔다.
11:12
케이크나 사러 나갈까. 귀찮았지만 공허함을 달래고 싶었다. 과제를 하러 묶었던 머리끈을 풀자, 이제는 어색하기까지 한 검정색이 옆을 가렸다. 다시 노란색으로 염색해야할까 싶을 정도로 검은색이 많이 내려왔다. 켄마가 후드를 뒤집어 쓰고는 케이크 상점으로 향했다. 대학로에는 없는 것이 없다. 데이트 장소 뿐만 아니라 케이크는 물론 갖갖이 먹거리들. 평소 애플파이를 자주 사 먹던 곳에 들러 케이크를 골랐다. 진열대에 놓여진 케이크들이 형광등의 빛을 받아 밝게 비춰졌다.
“둘 정도 먹을 작은 케이크 있나요.”
“조각케이크도 괜찮으시고, 왼쪽엣 두 번째에 있는 케이크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켄마는 대답하고선 애플파이를 꺼낼때처럼 능숙하게 진열대를 열고는 케이크를 꺼냈다. 둘 내지 셋 정도가 먹으면 딱 좋을만큼 아담한 케이크. 아담하지만 눈에 그리 뛰지 않는 무난한 느낌의 생크림 케이크였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어, 축 처졌던 마음에 생기가 도는 듯 했다.
포장을 한 케이크를 들고선 집으로 돌아왔다.
11:42
초에 대해 아예 말을 안했더니 부족한 것 보다는 넘치는게 낫다는 사고방식인지, 큰 초 3개에 작은초 5개를 챙겨주었다. 만 으로 계산해야하나 고민하던 켄마는 그냥 편한데로 하자며 긴 분홍색 초를 잡고는 인정사정 없이 푹푹 케이크를 찔렀다. 생크림 층이 꽤나 두터운지 빵이 아닌 반액체 정도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11시 40분...”
이왕 딱 정각에 불 끄고 축하하기로 했다. 저번 생일 때도 늦어서 이번에는 제일 먼저 축하해준다고 약속 했으면서, 술이나 마시고 있어. 소꼽친구의 생일보다 많고 많은 동기들 졸업이 더 중요하다 이거지. 화났다기 보단 괜한 심통에 입술이 튀어나왔다. 애인이였으면 안 그랬겠지. 무심코 한 생각이 자신을 갉아먹었다. 아아, 이런 치졸한 사람 되지 않기로 했잖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알람을 맞춰놓고선 게임기를 집어 들었다.
11:58
왠지 모르게 눈을 굴리다 시계에 닿았을 때의 시간은 거의 직전, 내가 태어난 날. 자신이 태어난 때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태어난 날. 물론 그저 365일이 지난 평범한 날이지만, 켄마는 모든 날은, 모든 것은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확신했다.
봐, 지금까지 생일을 23번이나 겪었지만 오늘같은 날은 처음이잖아.
비참하고, 비루했다
11:59
혼자라는 것을 알려주듯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50초
40초, 마지막 초에 불을 붙였다
30초, 눈을 감았다
20초, 옆집에 누가 왔는지 띠링하는 경쾌한 소리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10초, 늦는다 했으니 너는 아니겠지
2초, 바람에 촛불이 흔들리다 훅하고 꺼져버렸다
0:1
뭐야 너. 켄마가 뒤를 돌아보자, 쿠로오가 정장을 입은채 씨익 웃었다. 평소의 능글거리는 얼굴이 얄밉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애틋했다. 보고 싶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처음, 맞지? 하고 묻는 너의 숨소리가, 약간은 거칠었다. 술 마시고 왔다면서 무슨 정장을, 게다가 오른손에 꽃까지.
“쿠로, 늦는다며.”
“벌써 12시 지나버렸는데, 늦어버렸네.”
켄마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쿠로오가 무릎을 꿇었다. 무언가 에상 되는 것이 잇어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 했다. 그런 켄마의 예상과 같이 새빨간 켄마의 볼을 서늘한 손이 어루만졌다. 켄마, 나 봐. 약간은 낮으면서 천연인 장난끼가 겯든 목소리에 켄마가 살짝 고개를 내렸다.
네가 보였다.
“켄마, 난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친구 따위 할 생각 없었어.”
“...?!”
츄, 하는 귀여운 소리가 났다. 입술과 볼이 마주했다. 붉다 못해 익어버릴 듯한 얼굴에 놀란 눈을 한 켄마에게 쿠로오가 미소지었다. 넌 친구끼리 이런 것도 해? 난 이런거, 내 사람한테만 할건데. 눈웃음 치는 검은색 눈이 아주 요망해, 켄마가 딱하고 산통깨는 딱밤을 날렸다. 쿠로 안어울려, 할 말 있으면 바로 해.
“제 사람이 되어주세요, 코즈메상.”
결혼해주세요. 처음 부르는 호칭이였다. 코즈메상. 그만큼 자신도, 이 상황이 어색해 죽겠다는 거겠지. 이거 너무 잔인하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 아니 프로포즈 받았는데 하나도 안 기뻐. 기뻐도 기쁠 수가 없어.
“미국 비행기표는 뭐야, 결혼 못하니까 신혼여행 대신으로 때우자는 건가.”
“미국은 동성결혼이 합법이고, 연애만 하더라도 훨씬 관대하니까.”
진짜 결혼 할 생각이구나. 하하, 허탈한 듯 웃음이 나왔다. 쿠로, 나는, 켄마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쿠로오가 손을 받히고선 왼손 약지에 반지를 넣으려했다. 그러나 켄마가 불에 데인 듯 살짝 몸을 뒤로 뺐다. 답지않게 축 처진 강아지 같은 눈을 하는 쿠로오에게 뭔가 설명하러 입을 열었다.
“난 쿠로가 사회에게 상처받길 바라지 않아.”
상처 받았겠지, 나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 쿠로오는 안됐다. 어린날의 감정 착각이 아닌 가슴아픈 짝사랑으로 회상 되더라도, 너는, 너만은. 너까지 상처받게 할 수 없어. 24년을 살면서 배운 것은 그거였다. 남들과 다르면 상처받는다. 진흙탕에서 구르고, 발로 차이고, 손바닥으로 맞는 것보다도 아픈 그런 상처를 쿠로오는 알지 못했다. 얼마나 가혹한지도. 그 와중에서 그라는 존재는 구원같은 존재였다는 것 조차.
“괜찮아.”
괜찮아, 그 한마디에 고민하던 것이 모두 공중에서 가루가 되어 날리듯 분해되었다. 괜찮다는 말에, 정말로 마치 모든 게 괜찮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체할 수 없었다. 나 하나로도 벅차서, 너까지는 너무 나에게 과분해서,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짠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턱에 고인 눈물이 셔츠로 떨어져 물자국을 내었다.
반지를 낀 손들이 서로를 붙잡았다. 깍지를 끼고, 얼굴을 마주하고, 한참을 울었다. 한참을, 너무 속상해서, 너무 좋아서, 너무 기뻐서, 그 감정들이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듯 자신들 마음대로 앞서 달려나가는 바람에, 너무, 너무나도, 사랑해서.
스물셋의 청춘, 아니, 갈색 가을의 계절의 에피소드였다.